성경사전

사랑

시낭송가 김정래 2012. 7. 30. 14:39

<사랑 : Love >
아끼고 위하고 한없이 베푸는 이타적인 마음이나 행위, 또는 다른 사람의 안녕(安寧)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을 시작하기 전에 방언이나 천사의 말이나 예언이나 믿음이나 구제와 비교해 볼 때 사랑이 ‘가장 좋은 길’(the most excellent way)이라고 묘사했다(고전 12:31). 신약성경은 사랑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사랑으로 번역된 원어들 : 구약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히브리어는 ‘아헤브’(?heb)이며, 아가서에서 특히 많이 쓰인 ‘도드’(dod)와 ‘라야’(rayah) 등 여러 단어들이 있다. 신약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단어는 ‘아가페’(agape)로, 구약의 사랑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단어가 이 단어에 해당한다. 또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 모두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아가페’보다는 훨씬 적게 사용된 ‘필레오’(phileo)는 예수님과 나사로의 친밀한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었으며(요 11:3, 36), 마태복음에서는 ‘더 좋아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마 10:37). 특별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셨던 특별한 형태의 우정을 설명할 때도 사용되었다(요 20:2). 요한복음에서는 성자 예수님에 대한 성부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낼 때에 ‘아가파오’(요 3:35)와 ‘필레오’(요 5:20)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두 단어가 구별 없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인격이나 속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는 대상의 조건이나 상황이나 반응에 의존하지 않는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사랑은 자주 나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신 4:37; 7:8, 13, 10:15; 23:5; 대하 2:11; 사 43:4; 48:14; 63:9; 렘 31:3; 호 11:1, 4; 14:4; 습 3:17; 말 1:2). 이것은 특별히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선택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데 근거하고 있으며, 그 선택은 이스라엘의 자격이나 가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젖먹는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관계를 통해 설명되고 있지만(시 103:13; 사 49:15; 호 2장), 하나님의 사랑은 이보다 더 깊고 확고하며 인간의 불순종에도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시 78:68; 146:8; 잠 3:12; 신 4:37; 7:8, 13; 23:5; 대하 2:11; 렘 31:3; 말 1:2)뿐만 아니라 정의나 의(義) 같은 추상적인 것과 관련해서도 사용되었다(시 11:7; 33:5; 37:28; 45:7).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전적이며 독점적인 것이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계시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특별히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요 3:35; 5:20; 10:17; 14:31; 15:19; 17:23-24, 26). 예수님은 각색 병자들을 고치심으로(막 1:41; 눅 7:13), 죄인들을 용서하심으로(눅 15:11 이하; 눅 19:41 이하),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눅 19:41; 요 11:35), 그리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심으로(눅 7:34)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사건이요(요 3:16; 롬 8:37;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사건이다(롬 5:8).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은 새 이스라엘, 곧 교회에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각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진다(요 14:23; 16:27; 17:23; 갈 2:20).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사랑이시다(요일 4:8). 그리고 그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기초, 원천, 본보기이다(요일 4:10). 사랑은 하나님 안에 그 기원이 있고, 피조물을 통해 그에게 돌아간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하는 사랑이다(사 55:7).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
만물을 지으시고 보존하시는 지극히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출 20:6; 신 5:10; 잠 8:17),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시 103:13-14),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요 14:21, 23; 요 16:27), 헌금을 즐겨 내는 자(고후 9:7), 하나님의 자녀들(요일 3:1), 의인(시 146:8; 잠 15:9), 정직히 말하는 자(잠 16:13), 하나님을 아는 자(시 91:14), 부르심을 입은 자들(유 1:1), 나그네(신 10:18), 이스라엘(신 4:37) 등이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다.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 : 성경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뿐만 아니라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말하고 있는데, 다음의 것들은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즉 악한 일(시 52:3)과 거짓 또는 거짓말(시 52:3), 이방 여인(삿 16:15), 세상의 향락(잠 7:18), 뇌물(사 1:23), 이방신들(렘 2:25), 어그러진 길 또는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렘 14:10), 돈(딤전 3:3; 6:10; 히 13:5), 세상(딤후 4:10; 요일 2:15), 불의의 삯(벧후 2:15) 등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땅한 도리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실제적인 행동을 통해 나타내신 것처럼 그들 역시 행동으로 표현해야 했다. 그것은 곧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을 의미했으며(신 10:12-13), 그 내용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예배와 거룩한 삶, 자발적인 순종과 섬김, 전심을 다한 헌신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독점적이어야 하며, 다른 신과 공유할 수 없는 것이어야 했다. 이것은 비인격적인 요구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말하는 것이며(신 30:6), 또한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그 교제로 인해 생겨나는 즐거운 경험을 말한다(시 18:1; 116:1).
신약도 구약에서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막 12:28-34; 요 14:23; 15:9-10).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나 지식, 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등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동반된다(마 22:39).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 :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사랑하셨을지라도(신 10:15) 그들만이 하나님이 사랑하신 유일한 대상은 아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그들 가운데 있었던 고아나 과부, 그리고 나그네들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신 10:18-19). ‘곤궁하고 빈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신 24:14, 17; 26:11-13; 27:19).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도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표현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요일 3:17-18). 이웃에 대한 사랑은 선한 행위들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가를 치렀던 하나님의 사랑처럼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랑이 될 것이다. 신약에서는 구약보다 더 새로운 요구가 추가된다. 즉 이웃에 대한 사랑에, 원수에 대한 사랑도 포함시킨 것이다(마 5:43-44; 눅 6:27). 구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없었으나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그 사람에게 돌리라는 명령은 있다(출 23:4).

사랑에 대한 짧은 정의들
* 소극적인 측면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이다(고전 13:5).
성내지 않는 것이다(고전 13:5).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고전 13:6).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고전 13:4).
이웃에 악을 행치 않는 것이다(롬 13:10).
투기하지 않는 것이다(고전 13:4).
자랑치 않는 것이다(고전 13:4).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다(고전 13:5).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이다(고전 13:5)
거짓이 없는 것이다(롬 12:9).
* 적극적인 측면
오래 참는 것이다(고전 13:4)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고전 13:6).
참고 믿고 바라며 견디는 것이다(고전 13:7).
덕을 세우는 것이다(고전 8:1).
서로 우애하는 것이다(롬 12:10).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것이다(롬 12:10).
허물을 가리워 주는 것이다(잠 10:12; 잠 17:9).
죽음처럼 강한 것이다(아 8:6).
두려움을 내어쫓는 것이다(요일 4:18).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마 22:40).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요 21:15-17).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 질문에서 ‘필레오’(phileo)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근심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요 21:17),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아가파오’(agapao)의 대답을 기대하셨지만 결국 베드로의 수준에 맞추어 세 번째 물음에서는 ‘필레오’로 물으셨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본문은 하나의 같은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두 개의 서로 다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즉 ‘사랑하다’를 위해 ‘아가파오’와 ‘필레오’가, ‘양들’을 위해 ‘알리온’(arnion)과 ‘프로바티온’(probation)이, ‘치다’를 위해 ‘보스코’(bosko)와 ‘포이마이노’(poimaino)가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물음에 근심한 까닭은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물으셨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예수님의 질문 베드로의 대답 예수님의 응답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내 양을 치라
아가파오 필레오 알리온, 보스코 (15절)
아가파오 필레오 프로바티온, 포이마이노(16절)
필레오 필레오 프로바티온, 보스코(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