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가 김정래
2012. 7. 27. 17:19
<두로 : Tyre > 베니게의 중요한 해안 도시로 시돈에서 남쪽으로 40km, 악고에서 북쪽으로 45km 지점에 위치한 곳이다. 두로는 고대에 세워진 도시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BC 2800년경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베니게는 항해, 조선술이 발달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해양국으로, 베니게의 주요한 항구 도시인 두로는 국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사 23:8 참고). 두로의 주산물로는 자색 염료, 금속 세공, 유리 기구 등의 제조로 유명하였는데 두로의 배들은 애굽, 구브로, 로도스, 시실리,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들과 다시스를 항해하며 자색 물들인 옷감과 재목, 밀, 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여 두로에 엄청난 부를 가져왔다(대상 22:4; 겔 27:3; 사 23:18). 정치적, 지리적 면에서 두로는 지리적, 산업적 여건 때문에 힘있는 나라들의 침입을 자주 받았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1세에게 공격 받았으며(BC 1094) 살만에셀 3세 때는 조공을 바쳐야 했다(BC 853). 계속해서 디글랏 빌레셀 3세와 살만에셀 5세에 의해 공격을 받았으나 완전히 정복당하지 않고 결국 BC 722년 앗수르와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베니게가 정복당하고 에살핫돈에 의해 시돈이 정복당하자 두로의 바알 왕은 에살핫돈과 협정을 맺고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그 후 신바벨론 제국에 의해 계속 공격을 받았으며 느부갓네살이 13년 동안이나 두로를 포위하며 공격하자 두로는 이때 힘을 상실하였다. BC 539년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 두로도 그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두로는 여전히 백향목과 다른 생산품들을 수출하며 무역과 해운업을 계속하였다. 알렉산더에 의해 완전히 정복당했지만 알렉산더를 이은 셀류쿠스 왕조 때에는 이전과 같이 무역과 산업이 활발한 도시가 되었다. BC 126년 두로는 다시 독립하였으며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당했을 때(BC 64)도 계속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예수님과 두로 땅: 두로는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이방 땅이었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지적하시며 두로와 시돈을 언급하셨다(마 11:21-22; 눅 10:13-14). 예수님은 두로가 이방 땅이었지만 가셔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셨으며(마 15:21; 막 7:24) 그곳에서 가르치셨다(막 3:8; 눅 6:17).
두로와 이스라엘과의 관계 두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무렵 견고한 성읍이었다(수 19:29). 그래서 이곳은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지만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당하지 않은 곳이었다(삿 1:31-32). 두로 왕 히람은 다윗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백향목과 목수, 석수들을 보내 다윗 왕의 궁전을 짓게 하였다(삼하 5:11). 솔로몬 때는 백향목과 잣나무를 보내 성전을 짓는데 도움을 주었고(왕상 5:1-10) 두로 사람 히람은 성전의 놋기둥과 바다, 제사용 기물과 성전 기구들을 만들었다(왕상 7:13-47). 이에 대한 보답으로 솔로몬은 갈릴리 20개 성읍을 히람 왕에게 주었으나 그는 흡족해 하지 않았다(왕상 9:11-14). 히람은 솔로몬 왕이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자 바다에 익숙한 사공을 보내어 오빌의 금을 실어 솔로몬 왕에게 가져가도록 하였다(왕상 9:26-28). 두로 왕 엣바알은 그의 딸 이세벨을 아합과 정략 결혼하게 했으며(왕상 16:31) 이세벨은 두로의 우상을 들여와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빠지게 하였다(왕상 16:31-33). 요엘과 아모스에 의해 두로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맺은 형제의 계약(삼하 5:11; 왕상 5:1-12; 9:10-14)을 파기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에돔에게 노예로 팔아버린 죄를 지적받았다(암 1:9-10; 욜 3:5-6). 이사야와 예레미야, 에스겔에 의해서도 이들의 부와 교만 때문에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사 23:1-18; 렘 25:22; 27:3; 겔 26:1-6; 29:18). 그리고 이들의 예언대로 두로는 BC 332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약 3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노예로 팔려갔고 수천 명의 지도자들이 처형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때 섬이었던 두로를 공격하기 위해 길이 800m, 폭 60m의 제방을 쌓아 본토와 연결시켜 반도로 만들어버렸다. 초대교회 때 이곳에는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는데 바울은 전도여행 중 두로에 들러 7일 간 머물면서 제자들과 교제하였다(행 21:3-4). 두로는 신약 시대에도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동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였다. 636년 아랍에 의해 정복되었고 지금은 ‘수르’라는 작은 도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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