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름 : Name >
사람의 성씨 뒤에 붙여, 그 사람만을 가리켜 부르는 일컬음, 또는 다른 것과 구별짓기 위하여 사물이나 단체에 붙이는 일컬음을 말한다. ‘이름’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쉠’(shem)은 한 사람이나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시키는 외적인 표시이다.
이름과 관련하여 솔로몬은 아름다운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전 7:1)고 했고 잠언 기자도 재물보다는 좋은 평판(개역성경에는 ‘명예’로 번역됨)을 택하라고 했다.
또 성경에서는 명성 있는 사람들을 ‘이름의 사람’(창 6:4; 대상 5:24- 개역성경에는 ‘유명한’으로 번역됨)으로 표현하였다.
구약에 나타난 이름 :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름에 주어진 중요성과 이름 안에 담겨 있는 능력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그에 대한 소유와 지배의 관계가 세워졌음을 의미했다. 창세기 2:19 이하에서 아담은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복한 도시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것은 소유와 지배의 영역을 표시했다(삼하 12:28; 시 49:11).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주인으로서 별들에게 이름을 주시며(시 147:4), 이스라엘을 이름으로 부르셨다(사 43:1).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사 63:16; 대하 7:14). 또한 여호와의 이름은 성전 위에 있어 성전은 그 이름으로 일컬어졌고(렘 7:10) 법궤와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졌다(삼하 6:2). 이로 인해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가 되었다(렘 25:29; 단 9:18).
후대에 계승되는 이름 : 이름의 중요성은 한 사람의 이름이 그의 후손에게 이어진다는 개념에서도 나타났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계승하기 때문에 축복이었다(창 21:12; 48:16; 삼하 18:18). 또한 형사취수(兄死取搜) 결혼 제도로 인해 자녀 없이 죽은 사람의 이름도 그의 가족들 안에 남아 있게 되었다(신 25:5-10; 룻 4:5).
사실 의로운 자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신약의 사고는 구약 안에 그 뿌리가 있다(출 32:32-33; 시 69:28; 사 4:3; 겔 13:9). 이름이 그 사람 자체를 규정한다는 사고가 구약 전체에서 나타난다. 가장 좋은 예는 나발이다. 그의 이름 ‘나발’(nabal)은‘어리석은, 미련한’을 뜻하는데 그는 실제로 어리석은 사람이었다(삼상 25:25).
그외에도 하와(창 3:20), 가인(창 4:1), 노아(창 5:29), 이삭(창 17:17), 에서(창 25:25) 등의 이름은 이름과 그 사람을 그대로 연관시키는 많은 예들 중의 일부이다.
이름의 중요성은 각 이름에 붙여지는 두 번째 이름들에서도 나타났다. 정복자들은 항상 그들을 따르는 피지배인의 이름을 바꾸었다. 요셉은 ‘사브낫바네아’(창 41:45), 엘리아김은 ‘여호야김’(왕하 23:34), 다니엘은 ‘벨드사살’(단 1:7)로 바뀐 것이 그 예이다. 나아가서 이름은 그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그 후손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아브라함 개인을 넘어서는 이름이다.
임재의 상징인 하나님의 이름 : 하나님은 항상 그의 이름을 알리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아브라함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 창 17:1)으로, 모세에게는‘여호와’(출 6:2) 혹은‘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로 그 이름을 알리셨다.
다른 고대 세계에서는 신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신을 불러내거나 신을 깨운다는 일종의 마술적으로 이름을 사용한 경우가 나타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라는 구약의 표현에는 이러한 마술적인 요소는 없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은 이러한 마술적인 이름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출 20:7).
여호와의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성별할 것에 관한 많은 언급들이 있고(레 18:21; 20:3; 21:6; 22:2),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한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었다(말 1:6-7).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기에 인간은 그분의 직접적인 임재를 경험할 능력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인간 안에 두셨다.
여호와는 하늘에 거하시지만(신 4:36; 26:15), 이스라엘의 어떤 지역 안에 그의 이름이 거하실 처소를 정하셨고(신 12:11; 14:23; 16:11) 그 이름은 그것을 위해 지어진 건물인 성전 안에 계신다(삼하 7:13; 왕상 3:2; 5:17; 8:17).
그러므로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성전을 봉헌한 후에 드리는 솔로몬의 기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왕상 8:12 이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라는 표현은 여호와께 예배할 때에 쓰이는 제사 용어이며(창 4:26; 12:8; 습 3:9) 축복과 맹세를 할 때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신 10:8; 6:13).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에게 나아갔으며(삼상 17:45), 엘리야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단을 쌓았다(왕상 18:32). 이러한 경우에서 모두 ‘여호와의 이름’은 여호와 자신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이름이다’(사 47:4; 51:15; 렘 10:16; 31:35; 46:18; 51:19)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전능하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의 기념책에 그 이름이 기록될 것이다(말 3:16).
예수님의 이름
사도행전과 요한복음 및 요한서신에는 ‘예수의 이름’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신약에 와서 예수의 이름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처럼(창 13:4; 시 105:1) 초대교회 당시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행 2:21; 9:14, 21, 22:16; 참조, 행 19:17; 롬 10:13)을 불렀다. ‘하나님의 이름’ 혹은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 혹은 예수와 올바른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또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선포하였던 것처럼(신 18:22; 대상 21:19; 렘 20:9; 단 9:6) 신약에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기적을 행했다(마 7:22; 행 4:17 이하; 5:28, 40; 9:29). 옛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렸던 것처럼(대하 7:14), 예수를 믿는 자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행 9:14, 21; 고전 1:2)이며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행 11:26; 참조, 행 26:28; 벧전 4:16).
예수의 이름은 자주 예수 자신과 동의어로 바꿔 쓰이기도 했다(행 3:16, 5:41; 요삼 7). 예수의 이름은 의미상 예수의 능력과 동의어로도 사용되었으며(행 3:16, 4:7, 30), 예수의 이름에 힘입어 죄사함을 받게 되었다(행 10:43; 요일 2:12).
복음 전도의 내용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며(행 8:12),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서 택함을 입었고(행 9:15), 그 이름으로 인해 해를 입었다(9:16). 바울뿐만 아니라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았다(벧전 4:14; 참고, 요 15:21).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는 예수를 믿는 것이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요 1:12; 2:23; 3:18; 요일 3:23; 5:13). 그 밖에 하나님은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을 주시며(요 14:26),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엡 5:20).
신약에 나타난 이름 : 신약에서 이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노마’(onoma)로써 특히 누가 문서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 34회, 사도행전에 60회 나타나고 있고 계시록에서도 37회나 사용되고 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존재의 인격, 그 사람에게 본질적이고도 특징적인 것을 드러낸다. 주의 사자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가 낳을 아기의 이름을 예수로 하라고 말하면서 이사야 7:14의 ‘임마누엘’을 인용한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보여줄 분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예수나 세례자 요한처럼 어떤 사람의 이름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은 그 사람은 특별히 하나님에 의해 택하여졌음을 뜻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심으로써 그들에게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예를 들어서 바요나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면서(막 3:16) 교회의 반석이 되라고 하셨다(마 16:17 이하).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우뢰의 아들’이란 뜻의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셨다(막 3:17).
신약 속의 하나님의 이름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 존재 그 자체를 아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다’(요 17:6), ‘알게 하였다’(요 17:26)는 것은 곧 예수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자라는 뜻이다. 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요 17:12),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한다”(요 10:25),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때 받게 될 것이다”(요 14:13; 15:16; 16:23-24, 26) 등은 예수님이 자신을 아버지의 전권대사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요 5:43)고 말하고 있으며, 사람들도 예수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마 23:39)으로 환호하였다.
아버지를 계시하는 자요, 아버지의 전권대사인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8)라고 기도했으며, 또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도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될 것을 제일 먼저 간구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된다 함은 당시 로마 황제들이 자신들을 신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인간이 아닌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하나님으로서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만이 세워져야 한다는 간구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보여주는 기도였다.
이에 반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이다(계 13:6; 16:9). 또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율법을 범하는 위선적인 삶을 사는 자들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다(롬 2:24, 참조, 딤전 6:1).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은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10:20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고 표현되었으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7:8에서는 ‘생명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 3:5에 따르면 예수는 종말 때에 자기에게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다. 즉 예수님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책임지고 변호하실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8에서는 생명책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 요한계시록 2:17에 따르면 발람의 교훈(이단 사설)에 물들지 않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자들 곧 이기는 자들에게는 그 이름을 새긴 흰 돌을 줄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다. 여기서 흰 돌이란 초대교회 당시 연회의 초대권으로 ‘테세라’라고 불리는 흰 돌을 주는 풍습을 배경으로 한다. 이 돌을 가진 자만이 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에 근거하여 볼 때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이란 메시아가 베풀 종말론적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