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
<긍휼 : Mercy >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말하는데 ‘라함’(racham; 자궁)에서 나온 말이다.
이 단어는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 대한 감정’이라는 기본적인 의미에서 ‘긍휼’, ‘자비’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젖을 빠는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사 49:15),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가지는 반응(렘 31:20), 형제가 형제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의 상태(암 1:11) 등을 나타내는 데 이 단어가 쓰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감정 차원보다는 사랑의 표현이나 행위(출 33:19; 왕하 13:23; 시 102:13 등)로 드러났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죄에서 돌이켰을 때 주어지는 용서의 은혜를 표현할 때 쓰이기도 했다(사 14:1; 렘 12:15; 겔 39:25).
신약에서는 긍휼에 해당되는 헬라어로 ‘엘레오스’(eleos), ‘스프랑크논’(splagchnon) 등이 쓰였다. 긍휼은 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치유 속에 드러내신 예수님의 사역에서 잘 드러났다. 또 1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긴 왕(마 18:23-35), 방탕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아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 아버지(눅 15:11-32), 강도 만났던 자를 불쌍히 여겨 살려낸 사마리아인(눅 10:25-37) 등의 본문에서도 긍휼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또한 예수님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을 향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닌 긍휼이라고 하셨다. 이렇듯 긍휼은 정신은 외면한 채 형식만 중시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율법의 핵심으로 말씀하셨던 의(크리시스; krisis), 인(엘레오스; eleos), 신(피스티스; pistis) 중의 하나였다(마 23:23). 바울은 병 치유의 근원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음을 고백했으며(빌 2:27),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관련해서(롬 9:15; 11:30-32) 구원은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엡 2:4; 딛 3:5)과 은혜(엡 2:7-8)로 인해 얻는 것임을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들은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롬 12:8; 약 3:17). 또한 긍휼은 구제와 자선 등으로 나타나며 긍휼 베푸는 일은 심판 날 긍휼을 받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딤후 1:18; 유 21).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롬 1:29-32; 약 2:13). → 자비를 참고하라.
긍휼을 베푼 사람들 : 성경에는 긍휼을 베풀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자신을 팔아넘겼던 형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돕고자 했다(창 50:20-21). 모세는 양에게 물을 먹이려다가 목자들에게 쫓겨난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 주었으며(출 2:17)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룻이 이삭을 줍도록 배려했다(룻 2:16). 또한 다윗은 왕이 된 후 요나단을 생각하여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다(삼하 9:1-13). 이 외에도 기적과 회심을 체험한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돌봐 주었으며(행 16:33), 멜리데 섬의 토인들은 여행 도중 난파당한 바울 일행을 보살펴 주기도 했다(행 28:2).